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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ㅣ [경인일보] "한국체육우리가힘-대한민국상이군경체육회(1)"
작성일 2017-06-29작성자 상군체육회조회수 1,831


[한국체육 우리가 힘-대한민국상이군경체육회·(1)]한국 장애인체육의 시작

1960년대 용사촌서 '탁구·양궁' 첫발

경인일보 김종화·강승호 기자

발행일 2017-06-26 제15면

독립운동 김홍일 장군 '초대 회장' 1965년 英체육대회 3명 최초 출전 송신남씨, 1971년 첫 장애인 메달 탁구대표서 론볼 전도사로도 활약 
"삶의 의욕 심어주는 스포츠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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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복지가 질병을 치료하는 부분에 중점을 뒀다면 스포츠복지는 예방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어 선진국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빠르게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스포츠복지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는 광복이후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줬다면 2천년대 들어와서는 국민들의 건강과 체력증진을 위한 측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만불 시대가 시작된 후에는 건강한 삶을 위해 생활체육도 발전해 가고 있다.

또 2005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된 이후에는 그동안 소외됐던 장애인체육에 대해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하나 한국 사회에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전상(전쟁 중 부상)과 공상(복무 중 부상)으로 인해 장애인이 된 분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단체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상이군경체육회(이하 상이군경체육회)가 그곳이다. 

상이군경체육회는 상이용사들의 재활과 스포츠복지를 위해 묵묵히 수십년째 활동하고 있는 단체다. '호국의 달'을 맞아 숨은 곳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상이군경체육회가 어떻게 설립돼 오늘에 오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소개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체육 단체인 상이군경체육회는 6.25전쟁 막바지인 1951년 당시 조국을 수호하다 장애가 생긴 상이용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다. 

첫 시작은 몇몇 상이군인들이 뜻을 모아 서울 대방동에서 용사촌을 차리고 1960년대에 탁구와 양궁을 시작했던 것이 상이군경체육회의 시작이자 국내 장애인체육의 시발점이다. 설립준비위원장과 초대 회장은 한국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던 독립운동가이기도 하고 군인과 정치가로 활동한 김홍일 장군이 맡았다.

상이군경체육회는 재활체육 및 생활체육을 통해 등록된 선수들의 재활의욕 고취 및 가맹 경기단체를 지원함으로써 우수한 체육인을 양성하고 체육 복지 향상 및 국내 장애인스포츠 발전을 이끌기 위해 설립됐다. 또 국제교류를 통해 국위선양 및 국제친선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게 설립 목적이다.

상이군경체육회가 처음으로 해외 활동을 시작한 건 1965년 제14회 영국 국제척수장애체육대회(ISMG)에 6.25 전상 척수 상이선수 3명을 출전 시키면서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2005년 설립 된 후 활동을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상이군경체육회는 40여년 전부터 국제 활동을 시작했다. 

상이군경체육회가 설립 이후 첫번째 참가한 대회인 국제척수장애체육대회는 영국 스토크맨드빌 병원의 구트만(L.Guttman)박사가 스포츠가 장애인들의 치료와 재활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 후 필요성이 제기됐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 제1회 대회가 열렸다. 

1968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제3회 텔아비브 장애인올림픽에서 상이군경체육회가 선수를 출전 시켰고 1970년에는 척수상이자 재활을 위한 '본스틸체육관'을 건립하며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기초를 다졌다.

상이군경체육회 소속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기 시작한 건 1971년 영국에서 열린 상이군경대회에서다. 

베트남 전쟁에서 교전 중 총탄이 목을 관통해 장애를 안게 된 송신남(73)씨가 탁구 대표로 출전해 단식과 복식에서 최초로 2관왕에 오르며 첫 메달을 안겼다. 또 1년 뒤 독일 하이델베르크 패럴림픽에도 탁구 대표로 출전해 단식과 복식에서 2관왕에 올랐다. 

송씨는 1988년 서울패럴림픽에 론볼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을 채택되서 한국에 알려지자 론볼을 선수로 활동하며 론볼 전도사로도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그는 "처음 해외 대회에 나갈때는 우승하겠다는 생각 보다는 외국 구경이나 가자는 마음이었다"며 "하지만 독일 패럴림픽 2관왕이 돼서 돌아왔을 때는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도 하고 청와대에 가서 훈장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송씨는 "우연히 6.25 상이군경 선배들이 탁구와 양궁으로 재활치료 하는 모습을 TV로 접했고 탁구를 시작하면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며 "스포츠는 건강을 지켜주기도 하지만 삶의 의욕을 심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 스포츠복지가 필요한거 같다"고 전했다. 

/김종화·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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